여러분 이런 기회를 통해서 만나뵙게 되니 정말 반갑습니다.
저는 심재후이고, 현재 주식회사 이음넷의 대표로 있습니다.
이 강의를 들으시는 분 중 대부분이 00학번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학교에 다닐 당시만 해도 99학번 다음 학번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고민했는데,
벌써 그 00학번이 학교에 들어왔네요.
외형적인 기준으로 보자면 저는 아직 크게 성공한 사람은 아닙니다.
주식회사의 대표이사이기는 하지만, 우리회사의 규모가 이사진을 모두 합쳐도 10명 미만이고,
법인 설립한지도 4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까요.
그렇다면 외형적인 기준으로 보아도 크게 성공한 다음의 이재웅 사장이나
버추얼텍의 서지현 대표도 있는데, 이런 분들을 모시지 않고 저를 불렀을까요.
여러가지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겠지만,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해 보면,
제 자신이 급변하는 인터넷 세상에서 살아가는 '진행형'의 사람이어서가 아닌가 합니다.
제가 졸업하고 현재의 인터넷 사업을 하기까지 좌충우돌 겪었던 일들을 사실대로 말씀드리고,
인터넷 세상을 살아가는 한 '사례'로서 여러분이 참조할 수 있다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일이 아닌가 합니다.
제가 학교를 들어온 88년에도 학교 안에는 각종 구호와 최루탄 가스가 가득했습니다.
저는 입학시험을 대학별로 치른 세대인데,
예비소집 때 '전두환 타도'라는 구호가 대문짝 만하게 붙어 있는 건물이 시험장이라고만
기억했다가 정작 시험 보는 날 그 종이를 떼어버려서 시험장을 찾는데 애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뿐만아니라 일주일에 적어도 1 ~ 2일은 시위 때문에 교문이 봉쇄되어서
세브란스 병원쪽으로 걸어다녀야 했습니다.
그 당시 저를 비롯한 대학생들은 여러가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돌이켜보면 당시에 하던 고민들은 내용별로 모두 제각각이었고,
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준비도 모두 제각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좀 심하게는 정신분열적인 고민이었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들어 학업도 열심히 하고 사회적인 이슈에도 목소리를 내는 대학생이 되고 싶지만,
학업을 열심히 하고 좋은 학점을 받으려면 열심히 수업을 들어야 하고,
사회적인 이슈에 목소리를 내기 위해 시위에 참가하려면 수업을 빠져야 하는 딜레마가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대학 생활을 시작한 1학년 1학기,
술이나 담배, 당구 같은 대학생의 오락거리에 재미를 붙이지 못했던 저로서는
전자오락이 저의 유일한 낙인 것처럼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발견한 것이 문과대학에서 컴퓨터실을 관리하는 전산 자원봉사회원을 뽑는다는
공고였습니다.
이 자원봉사회를 통해 컴퓨터를 접하게 된 것이 현재의 제가 있을 수 있었던 첫번째 계기인것
같습니다.
제가 학교를 졸업한 90년대 초반에는 정보통신 분야에서 일자리는 많이 늘어난데 비해
인력 공급은 많이 부족했습니다.
저는 대학시절 전공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컴퓨터를 접해보고 프로그램을 작성한 경험이 있다는
이유로 H모 기업에 입사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제가 좋아서 시작했던 컴퓨터 프로그래밍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직장이라는 점에서
썩 마음에 들어했었죠.
그렇지만 입사한지 몇 달되지 않아서 스스로 하는 일에 대해서 희망보다 실망을
많이 갖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물론 하는 일이야 내가 하고 싶은 분야이지만,
여하튼 회사원으로서 회사의 별 사소한 규칙까지 다 지켜야 하고,
내가 하는 프로그래밍도 이미 누군가 설계해놓은 전체의 반의 반의 반의 반도 안되는
일부분이었니까요.
이쯤 되면 콘베이어 벨트 앞에서 하루종일 똑같은 부품만 조립하는 근로자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느낀 거죠.
그 후 S모 기업으로도 옮겼지만 회사나 제가 맡은 일에 대한 생각은 여전히
부정적인 방향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제가 쉽사리 회사원으로서의 생활을 접을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안정된 생활을 보장한다는 점이 제일 컸을 것입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일을 열심히
하든 열심히 하지 않든 월급은 꼬박꼬박 주고, 스스로 사표 내기 전에 해고하는 일은
거의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직장에 다니고 있다고 해서 안정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사건이 터졌는데,
바로 'IMF'입니다.
IMF 때문에 자신이 의사와 관계없이 퇴직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저는
'더 이상 조직(회사)가 개인을 보호하는 시대는 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내가 하고 싶은 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시작해야겠다고 느낀 거죠.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 생활을 거쳐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저는 우리 회사를 '벤쳐 회사'라고 표현하기보다는 '배낭 회사'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여기서 '배낭'이라는 단어는 바로 '배낭 여행'에서 따온 것입니다.
여행은 패키지 여행도 있고, 배낭 여행도 있습니다.
물론 이 두가지 형태의 여행이 장단점이 있고,
개인의 취향에 따라 어떤 형태의 여행을 하고 싶은지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몸은 피곤하고 미리 준비하고 계획할 일은 많지만 이러한 과정 자체가 즐겁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자기만의 여행을 만들고 싶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배낭여행을 선호할 것이고,
이런 사람이라면 제가 하고 있는 형태와 같이 '배낭 회사'를 준비해서
시작할 자질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대학의 분위기도 실용적인 방향으로 많이 바뀌어가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여러분들은 공부나 일, 사랑에 대해서 제 대학시절처럼
추상적이고 정신분열적인 고민만 하지 말고, 구체적인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뜻이 맞는 몇사람이 모여 이러한 구체적인 고민을 나누고 미래를 준비한다면
그 과정도 재미있을 뿐더라 결과도 보람될 것이구요.
또 누가 압니까. 그 모임에서 마음에 맞는 짝을 만나 결혼할 수 있을지...
이렇게 먼 안목으로 바라보니 바로 다음주 보는 시험이 아주 가볍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너무 시험에 목매지 마시고 적당히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연세대학교 '정보와 사회' 과목 특강 내용 (2000. 6. 5월)